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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 CRITIC

김재욱의 디지털 콜라주
실재와 초현실, 현실과 가상의 접점에서 빚은 ‘디지털 풍경’

 

동적 시각예술로서의 디지털 콜라주

 

미디어아티스트 김재욱은 ‘디지털 콜라주’(Digital collage)를 주요 창작형식으로 삼는다. 실사 평면(2D와 3D) 과 컴퓨터그래픽(CG)을 마우스와 데이터 값으로 그린, 일종의 ‘디지털 풍경’이다. 이를 조금 더 쉽게 설명하기 위해 작가의 말을 빌리자면 “평면 2D, 입체 3D, 멈춰있는 스틸 이미지, 움직이는 무빙 이미지, 실제를 기반으로 둔 실사(實寫), 데이터화 된 가상의 컴퓨터그래픽 등을 콜라주하고 모션(motion)을 하나의 미디어 캔버스 위에 혼합한 동적 시각예술.” 이다.

 

대표작은 대구의 전경을 담은 <신일월대구도>(新日月大邱圖, 2019)와 한국의 주요 도시표상을 옮긴 <신한국생도>(新韓國生圖, 2020) 등이다. 강원도 최전방에 위치한 아트호텔 리메이커(Re:maker)에 2021년 설치된 <신강원산수도>(新江原山水圖, 2021)도 역시 빼놓을 수 없는 작품으로 꼽힌다. 이들 작업은 제41회 화랑미술제(2023.4.12.~16.)에 마련된 신진작가 특별전 ‘ZOOM-IN’ 출품작이기도 하다. 김재욱은 약 470여 명의 지원 작가 중 선발된 10인 중 한명이다. 모두 4점의 작품을 내건다.

 

이중 대구 중구 동성로 태왕 스파크 빌딩 외벽에 설치된 <신일월대구도>는 조선시대 궁궐 정전의 어좌 뒤편에 놓였던 다섯 개의 산봉우리와 해, 달, 소나무 등을 소재로 그린 병풍인 일월오봉도(日月五峯圖)를 배경으로 대구타워, 달구벌역, 계산 성당, 모노레일, 별과 무지개 등이 하나의 화면 내에서 유동하는 작업이다. 대구의 과거, 미래를 잇되 현재의 세계를 음양과 오행의 원리에 따라 시각화 한 미디어 파사드로 풀이된다.

 

인천국제공항 제1여객터미널 탑승동 미디어타워에 자리 잡은 <신한국생도>는 제목 그대로 각 지역(6광역시 1특별시)의 상징들을 십장생도(十長生圖)에 접목, 조화롭게 묶어냈다. 고향 대구의 김광석거리와 제주도의 돌하르방, 서울 남산타워, 월드컵경기장 및 올림픽공원, 롯데타워, 63빌딩, 세종대왕상, 부산의 광안대교, 포항의 호미곶, 경주 첨성대 등이 ‘한국적 풍경’으로 재해석된 채 화면을 수놓고 있다.

 

이들 작품은 하나같이 지역적·문화적 정체성을 공진시킨다는 게 특징이다. <신한국생도>가 들고 나는 사람들로 분주한 인천공항이라는 장소성을 반영한 것처럼 대개의 작업 또한 장소는 작업제작에 있어 고려할 사항이다. 하지만 그보다 눈여겨봐야할 부분은 각 지역의 명소를 재해석하는 과정에서 발현되는 문화적 채록과 그로 인한 지각(知覺)의 수용이다. 일월오봉이나 십장생 등에서처럼 전통(전통적인 이미지의 오마주)을 배경으로 한 특정 지리 및 역사와 고유한 사회적·문화적 기호를 통해 지역의 특성과 다양성을 내보인다는 게 특징이다. 특히 공동체 내외의 사회적·정치적·경제적 관계를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복잡하고 역동적인 개념을 시각화하고 있다는 것은 그의 작업에서 발견 가능한 의의이다.

 

그런 점에선 <신강원산수도>도 마찬가지다. 분단이라는 한반도의 상황과 더불어 최전방에서 군 생활을 했던 작가의 (강원도에 대한)기억과 이념에 의해 물리적 단절을 겪고 있는 우리의 현재를 시공의 단락 사이사이마다 얹혀 놓고 있다. 2023년 신작이자 역시 화랑미술제에 선보인 <신부산해도>(新釜山海圖) 또한 큰 범주에선 <신일월대구도>와 <신한국생도> 등과 동일하다. 해양도시임을 나타내는 넓은 바다와 고래, 광안대교, 해운대 등이 묘사되어 제목을 보지 않고서도 해당 지역이 어디인지를 가늠할 수 있다.

 

시각적 미(美), 기억의 환류

 

그의 작업에선 화면에서 느낄 수 있는 시각적 미(美)와 기억의 환류라는 정서적 영향을 무시할 수 없다. 즉, 이미지를 발화점으로 한 감관(感官)을 통해 올라온 지각이 시각을 넘어 객체의 입장에서 체감되는 과정을 중시하고, 오브제의 모양이나 색상, 구도 등과 같은 이미지 내 시각 요소의 배열은 구성상의 균형, 조화 및 시각적 관심과 활발하게 교류하고 반향을 일으키며, 동시에 보는 사람의 경험과 문화적 바탕에 따라 감정적 반응이 달라질 수도 있도록 열려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실재하면서 초현실적이며, 현실과 가상의 접점에 있는 그의 작업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건 단지 상징적인 이미지의 나열 혹은 혼합한 단채널 영상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점이다. 실제론 마치 뫼비우스의 띠처럼 시작과 끝이 없으며, 시간 내 존재하나 시간 밖에 자리한다. 작가의 말처럼 그의 “작업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해프닝은 정말 해프닝으로 물 흘러가듯 사라지고 다시 생기고 반복 지속된다.”

 

흥미롭게도 작가의 작품 속에서 끝없이 돌고 도는 이 순환적 성격은 저마다의 화제(話題) 를 끌어안은 채 일정한 주기율을 무너뜨리면서 하나이자 전체에 속하는 양태를 띤다. 이때 사물마다 품은 어떤 줄거리들은 불협화음 없이 조화를 이뤄 또 다른 이야기를 생성하는 속성을 갖는다. 이는 죽음과 살아감이 평평한 생사의 선상에서 살아가는 인간 삶, 사회적 흐름과도 무관하지 않다.

 

이외에도 그의 작업은 과거와 현재에 대한 통찰력을 얻고 미래의 패턴을 상상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또한 역사의 어떤 기간도 영원하지 않으며 모든 사회와 문명이 동일한 성장, 쇠퇴 및 갱신 패턴에 종속되어 있음을 상기시킨다. 거기에 더하여 인간의 삶은 역사를 거슬러 올라 미래에도 계속될 (지속적인)과정의 일부라는 것을 보여준다. 모든 인간의 상호 연결성과 행동, 결정이 우리 자신뿐만 아니라 미래 세대에 영향을 미치는 방식에 대한 인식의 가치와 호환되고, 작가는 이러한 인간 삶과 사회의 연속성에 대해 의미와 목적을 부여한 채 그것에 대한 지속적인 탐구를 미학적으로 고려한다. 따라서 그의 작품들은 우리 주변의 세계와 그 안에 위치한 여러 현상들을 이해하고 소통하려는 욕구와 갈음된다 해도 무리는 없다.

 

이러한 관점은 어쩌면 존재 의미에 대한 질문과도 맞닿을 수 있다. 휘황한 그의 화면처럼 인간을 포함한 존재의 여러 근본적인 측면을 건드리는 복잡하고 다면적인 질문을 함유한 채 우리의 사회적 상호 연결성을 표현하면서 의미와 목적, 필멸의 존재에 대한 다양한 층위를 경험을 토대로 한 깊은 신비로 드러내 보인다는 것이다. 물론 신비로움의 근원은 가각의 오브제에 녹아 있는 의미들로 인해 더욱 농도가 짙어진다.

 

예를 들면 그의 작업에 자주 등장하는 태양과 달은 전통의 맥락에서 살필 수 있는 세계의 근원이자 순응할 수밖에 없는 자연법칙과 무관하지 않다. 그것들은 화면 양쪽에 놓임으로써 조화롭고 균형 잡힌 조형을 만든다. 특히 태양의 따뜻함과 능동적 에너지는 달의 시원하고 차분함을 보완하여 빛과 어둠, 온화함과 부드러움, 활기와 평온의 완벽한 밸런스를 구축한다.

 

풍선은 인간의 숨을 불어넣는 생명력의 기호다. 폭죽은 아름답지만 영원하지 않은 찰나의 헛헛함을 뜻하고, 특별한 자연조건에서만 볼 수 있는 무지개는 주변에 항상 존재하지만 자각하지 못하는 인식과 현상을 대리한다. 나아가 비행기나 우주선 등의 탈 것들은 화면에 능동성을 부여하는 장치이면서 시공을 넘나들 수 있는 타임머신 같은 기능을 한다. 이밖에도 그의 작품의 단골소재인 폭포는 “무수히 많은 데이터들이 내려가서 사라지는 것이 아닌, 오늘도 누군가 뭔가를 만들고, 누군가 뭔가를 쓰고, 누군가 뭔가의 파장을 일으켜 계속해서 새로운 밈(meme)들이 업로드 되는 디지털 현상” 과 동일한 결을 지닌다.

 

이접을 통한 조형의 동시대적 번안

 

김재욱의 미디어아트는 표피적인 것에 국한할 수 없는 의식화되고 공고히 각인(刻印)되는 것에서 탈피하여 작품들의 이면(裏面)에 드리운 리얼리티(reality) 너머 화려함에 가려지거나 은폐된 이상(理想)을 가리키고 있다. 더구나 환하게 빛나는 조형은 오히려 외형에만 치우쳐 내형이 존재하지 않는 것들에 대한 숙고(熟考)와 각기 다른 상황 이접을 통한 조형의 동시대적 번안이라는 수사(修辭)가 배어 있다.

 

또한 누군가에겐 회상할 수 있는 시간적 매개 역할을, 순환성은 다람쥐 쳇바퀴 돌 듯 반복하며 살아가는 (작가를 포함한)동시대인들의 삶을, 랜드마크를 통한 명료한 내러티브(Narratives: 내러티브는 구조화되고 순차적인 방식으로 제시되는 실제 또는 가상의 사건에 대한 설명이다)는 인간의 역사 순환이 우리의 행동과 반복되는 사회적, 정치적 경향에 의해 좌우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김재욱의 디지털 콜라주는 플롯, 캐릭터 개발, 설정, 어조 및 관점과 같은 조건들이 모두 포함되며 함께 작동하여 응집력 있고 매력적인 스토리를 만든다. 실재와 가상, 과거와 현재, 순수와 물질자체라는 이원론이 부유하지만 실재이면서 가상이고 가상이면서 실재라는 점에서 다차원 시간세계를 아우른다. 그건 적어도 공간을 지정하는 것은 아니며, 시간의 레이어에 관한 개념이다. 그리고 이는 어떤 명소에 놓인 어떤 상징물인지에 앞서 그 상징물을 둘러싼 시간의 이야기를 만드는 요소이다.

 

이중에서도 랜드마크는 그는 “인간의 손으로 만들어져서 오랜 시간 인간 사회에서 유지가 되어져 왔으며, 주변의 수많은 일이 발생하고 흘러감에도 꿋꿋이 제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 그 자체.”라고 작가노트에 밝히고 있다. 그래서일까, 도상들 사이에 부유하는 시간의 지층을 따라가다 보면 사유의 흔적들과 조우할 수 있고, 그렇게 소재와 형상의 조화에서 비롯된 디지털회화성은 형상 너머의 세계마저 궁금케 하는데 아쉬움이 없다.

 

그러나 또 다른 시점에서 보자면 그의 작업은 과거와 현재라는 두 개의 다른 시층을 하나의 화면에서 환영(illusion)적 시각언어로 드러냄으로써 그 연접으로 야기되는 시공간적 특성 자체를 거론하지만, 한편으론 질량을 달리하는 동시대미술의 조타를 스스로 설정하기 위한 초석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처럼 김재욱의 미디어 작업은 시각적 울림과 함께 어떤 의미에 있어 신구(新舊)의 호흡이요, 통합의 운율(韻律)이며 디지털이라는 장르를 통한 새로운 회화를 만들려는 낯선 조타의 분출(噴出)이라 해도 그르지 않다. 또한 그의 작업은 조형적·미학적 관점에서 어떻게 ‘실재적(實在的)가치’를 받아들여야 할 것인가를 분석하면서 자신만의 표출방식에 무리 없는 재량을 둔 채 독창적인 세계로 나아가기 위한 자발적 전명(傳命)이라 해도 틀리지 않다.

 

다만 전반적으로 그의 근작들은 외견에 치우치도록 유도한다. 과거 대구발전소 입주작가 당시 제작된 작업들이나 일부 작품에서 엿보이던 시대성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과 고찰은 다소 약하게 다가온다. 아예 없는 건 아니더라도 은유에 묻혀 도드라지지 않음은 부정하기 어렵다.

 

이런 얘기를 하는 이유는 기록에 관한 의미 때문이다. 예술가들은 종종 그 시대의 시대정신에 반응하여 사회의 지배적인 태도와 가치를 반영하거나 도전하는 작품을 만든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들은 문화적 대화를 형성하고 영향을 미칠 수 있으며, 그 시대의 문화적 경관을 정의하는 새로운 아이디어와 운동을 촉발할 수도 있다.

 

또한 예술의 시대정신과 비판성은 특정 예술 운동이나 시대 내에서 연속성과 일관성을 만드는 데 도움을 준다. 특정 시대의 공유된 관심사와 가치를 반영함으로써 예술가는 공동체 의식과 공유된 목적을 만들어 보다 응집력 있고 (앞서 언급했듯)의미 있는 예술 운동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는 김재욱의 디지털 콜라주에 거는 기대다.

 

물론 예술이 항상 그 시대의 시대정신에 얽매이지 않는다는 점은 주목할 가치가 있다. 일부 작가들은 시대를 초월하고 보편적인 작품을 선택하여 시간과 문화를 초월한 인간의 경험에 대해 서술하는 게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대정신과 비판성은 그 시대의 예술을 형성하고 정의하는 데 강력한 힘이 된다. 필자는 김재욱의 작업에서 그러한 흔적들이 보다 더욱 짙어지길 고대한다. 랜드마크의 역할도 필요하나 예술의 역할은 무엇인가에 대한 것을 말이다.

 

(글 / 홍경한, 미술평론가,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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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화랑미술제 특별전 ZOOM-IN, 김재욱 부스, COEX, 2023.04.12 - 04.16

1. 신일월대구도, 단채널영상, 00:05:00 반복재생, 가변크기, 2019

2. 신한국생도, 단채널영상, 00:05:00 반복재생, 가변크기, 2020

3. 신강원산수도, 단채널영상, 00:05:00 반복재생, 가변크기, 2021

4. 신부산해도, 단채널영상, 00:05:00 반복재생, 가변크기, 2023

김재욱의 랜드마크 디지털 콜라주(collage)

 

1.

  “24시간은 늘 살아 숨 쉰다. 과거의 어제는 지난 이에 대한 그리움이고, 현재의 오늘은 생산적 즐거움이며, 미래의 내일은 꿈꾸게 하는 설렘이다.” 작가의 말이다. 김재욱의 이번 전시작은 그리움(과거), 즐거움(현재), 설렘(미래)이라는 감정을 자신의 고향(신일월대구도)과 국적(신한국생도) 그리고 군 생활을 했던 곳(신강원산수도)의 랜드마크(landmark)를 콜라주 기법으로 제작한 디지털 풍경화, 이를테면 픽셀조합의 합성이미지로 만든 디지털 콜라주 영상이다.

  김재욱 작가의 작업에서 중요한 주제는 랜드마크다. 랜드마크는 “딱 보면 거기가 어딘지 금방 알 수 있는 대형 마스코트”(나무위키 참조)라는 의미에서 역사적인 유적이나 높고 긴 교량이나 탑 도시의 건축물과 상징적인 인공 조형물이 등장한다. 오늘날 현대 도시의 랜드마크는 유명해 질수록 수많은 사람들을 불러오는 관광지가 되기도 한다. 이처럼 랜드마크가 명성을 얻는 것은 국가와 도시의 위상과도 연결되어 있어 도시의 정체성뿐만이 아니라 브랜드가치를 위해서도 매우 중요한 상징적인 의미를 가진다.

  이번 전시에서 보게 되는 김재욱의 ‘랜드마크 디지털 콜라주’는 작가의 고향인 대구의 전경을 담은 <新日月大邱圖, 2019>, 두 번째는 <新韓國生圖, 2020> 그리고 세 번째 영상은 최전방에서 군 생활을 했던 강원도에 대한 상징적 이미지를 콜라주한 <新江原山水圖, 2021>가 있다. 이 세 작품은 도시와 국가에 대한 작가의 상징적 지각경험의 범주화뿐 아니라, 랜드마크에 대한 객관적인 데이터를 통해 도시와 국가의 대표적인 이미지를 디지털 콜라주, 즉 컴퓨터 그래픽으로 그린 풍경화다.

  김재욱의 ‘랜드마크 디지털 콜라주’는 하늘과 산을 기점으로 해와 달이 좌우로 배치되어 있다. 이러한 배경에는 음양오행 사상을 근간으로 각각의 시리즈인 일월오봉도(日月五峯圖)와 십장생도(十長生圖) 그리고 산수도(山水圖)가 가진 전통의 자연관을 담아 대구와 한국 그리고 강원도를 상징하는 실사평면(2D와 3D)과 컴퓨터그래픽(CG)을 붓이 아닌 마우스와 데이터 값으로 그린 그림이다. 그리고 이 작업을 위한 재료는 픽셀캔버스 위에 레이아웃 배치 과정을 거치고, 추가로 1초에 29.97프레임이라는 영상매체의 시간개념을 더해 모션 키프레임으로 한 땀 한 땀 수를 놓듯 한 프레임, 한 프레임에 움직임을 더해 만든 디지털 풍경화다.

 

2.

  최근 3년간 집중해온 김재욱의 전시작에서 보게 되는 것은 화려한 도심 속에서 삶의 궤적을 그리 듯 밤하늘의 별처럼 무수한 도시의 꿈들이 피었다. 사라지는 스펙터클(spectacle)한 랜드마크 디지털 풍경화다. 이러한 풍경에 대해 작가는 영상이 가지고 있는 러닝 타임이라는 개념을 무너뜨리고, “시간이 흘러가며 기승전결이 있고,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는 하나의 내러티브를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각각의 유의미한 오브제들이 고유한 시·공간적 스토리텔링을 내포하고 이들 모두가 결합되어 파생한 조각모음으로 만든 작업”이라고 한다.

  이처럼 이번 전시작에 담긴 작가의 생각은 어떤 생산적인 활동을 하거나 혹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찰나의 순간일 지라도 모두가 오밀조밀하게 쳇바퀴 돌아가듯 각자의 인생을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는 삶을 담고자, 나무가 아닌 숲을 보는 시점으로 시작했다는 것이다. “어떠한 일이 있어도 오늘의 해가 지면 내일의 해가 뜨고, 오늘의 달이 져도 내일의 달이 떠오르는 것처럼,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고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는 말처럼, 랜드마크라는 상징적인 부분을 멀리서 바라보는 전체의 풍경으로 보고자 했다.” 이러한 작가의 시점은 역설적이게도 치열하게 하루하루 살아가는 개인의 삶이 하나의 랜드마크라는 점, 바로 그 모음들이 김재욱의 디지털 풍경이 되고 있음이다. 이 지점은 기 디보르(Guy Debord)가 말한 “스펙터클 일반은 삶의 구체적인 전도로서의 비생물(the nonliving)의 자율운동”처럼, 낮과 밤이 소멸 없이 명멸하는 빛의 시간이다. 그러나 그 빛 너머 전통과 현대, 부분과 전체에 접근하는 김재욱의 작가적 태도는 스크린 너머를 건조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시선이 아닌, 사물의 세계에서 지각의 흐름을 시각화하는, 이를테면 사적 기억의 공적 공유방식에 있다.

  “시작과 끝이 없기에 이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해프닝은 정말 해프닝으로 물 흘러가듯 사라지고 다시 생기고 반복 지속됩니다. 인간의 숨을 불어넣어 생명력을 얻은 풍선이 하늘로 유유히 날아가는 가하면 아름답지만 영원하지 않은 찰나의 빛인 폭죽이 무한히 터지고, 실제 주변에 항상 존재하지만 모든 조건이 갖춰져야지만 두 눈으로 볼 수 있는 무지개가 어렵지 않게 존재를 합니다. 무한한 공간에서 빛을 내는 태양과 달은 인간이 만든 한정적인 공간에서 발광하는 미러볼과 결합하여 재창조된 이 세계관에서 공존합니다. 폭포는 무수히 많은 데이터들이 내려가서 사라지는 것이 아닌, 오늘도 누군가 뭔가를 만들고, 누군가 뭔가를 쓰고, 누군가 뭔가의 파장을 일으켜 계속해서 새로운 밈들이 업로드 되는 현상을 표방하고 있습니다.” 확실히 김재욱은 ‘랜드마크 디지털 콜라주’에 공감각적인 변화를 담고 있다. ‘밈(Meme)들이 업로드 되는 현상의 표방’에서처럼, 이번 전시에서 보여주는 세 개의 작품은 문화의 진화를 보여주는 디지털 풍경화일 것이다.

3.

  신일월대구도(新日月大邱圖), 무엇보다 이 디지털 영상작업의 기본적인 구조는 달과 해 앞의 다섯 산봉우리를 그린 그림이란 의미를 담아 주로 병풍으로 그려져 조선 시대 어좌 뒤에 놓였던 일월오봉도(日月五峯圖)를 배경으로 했다. <신일월대구도>를 들여다보면서 기억 속 어딘가에 있는 상징이미지를 만난다. 대구 타워를 중심으로 가로지르는 지상철인 모노레일을 따라 가면 디아크와 계산 성당이 보이고, 달구벌 교통 표지판과 갓 바위 사이에서는 기타를 치는 김광석도 만난다. 하늘 위로 풍등이 빛을 품고 날 때, 폭죽도 화려하게 수를 놓는다. 별똥별은 사선을 그리며 사라지고 왼쪽 하늘에서 나온 무지개는 해를 향해 흐른다. 시선이 흐르는 곳에서 멈추고, 그 흐르는 시선 속을 따라가다 보면 색으로 연주하고 눈으로 듣는 오케스트라를 본다.

  두 번째 작업인 신한국생도(新韓國生圖)는 불로장생의 기원과 상징물을 소재로 그린 십장생도(十長生圖)를 한국풍경으로 설정했다. 서울월드컵경기장, 올림픽공원과 평화의문 그리고 대구의 김광석거리, 광주의 녹색 택시, 부산의 광안대교, 울산의 공단, 포항 호미 곶 그리고 숱한 고난을 겪은 국보 1호 숭례문, 세종대왕상, 대전의 엑스포 타워, 인천국제공항과 K-팝 BTS, 경주 첨성대, 제주도의 돌하르방, 국회의사당, DDP와 KTX 등 김재욱의 신한국생도에서 대표성 랜드마크는 수없이 많은 사람들의 기억이 담긴 익명의 도시인들이 투영된 상징들이다.

  전통 산수도를 오마주한 2021년 작인 신강원산수도(新江原山水圖)에서는 앞선 스토리텔링들의 연장선에서 동시대 속 유일하게 대한민국만이 이야기 할 수 있는 분단 현상을 재해석한 대한민국 최전선의 강원도 풍경이다. 작가는 2년의 군 생활을 최전방에서 했다. 그곳에선 평화롭게 보이는 바다가 험난한 지형지물이고, 육지에는 여전히 철책을 사이에 두고 총을 겨누고 있는 대한민국의 현실을 몸소 체험한 곳이다. <신강원산수도>는 DMZ, 2018 평창 동계올림픽 경기장, 통일전망대, 6‧25전쟁 당시의 교전지, 속초 엑스포 타워, 촛대바위에 걸린 철모가 눈에 띈다. 그리고 양구 제4땅굴과 철조망 너머의 미지의 땅인 북한에는 모란꽃 몇 송이가 피어있다. 하늘을 잇는 스키장 리프트는 무인으로 텅 빈 수레만 오고 간다. 그래서 작가는 철책너머 풍경이 눈앞에 선하지만 갈 수 없는 곳에 대한 열망을 UFO에 담고 있다.

  이번 전시작인 ‘랜드마크 디지털 콜라주’는 붓이 아닌 마우스로 그린 디지털 영상그림이다. 무엇보다 랜드마크가 가진 상징성이 한 도시 한 국가를 구성하는 시민과 국민의 얼굴이고, 그 얼굴들이 어좌 뒤에 놓인 풍경으로 또 불로장생의 십장생을 품은 대한민국의 산수화로 탄생했다. 이 상징적인 디지털풍경화에는 다양한 관계의 의미가 내포되어 개인과 다수, 도시와 국가의 상징경험이 교차하는 예술의 장(art-field)이고, 실재와 가상 사이를 연결하는 ‘랜드마크 디지털 콜라주’다. 이 전시작을 보는 ‘사이 공간’에서 현재라는 시간은 동시에 과거와 미래를 품고 있는 시간이자, 개인과 다수가 지각 가능한 교환이 이루어지는 상징체험의 장소다.

(글 / 김옥렬, 현대미술연구소대표, 2021)

2021 올해의 청년작가전, 김재욱 개인전, 대구문화예술회관, 2021.07.15 - 08.21

1. 신일월대구도, 단채널영상, 00:05:00 반복재생, 가변크기, 2019

2. 신한국생도, 단채널영상, 00:05:00 반복재생, 가변크기, 2020

3. 신강원산수도, 단채널영상, 00:05:00 반복재생, 가변크기, 2021

4. 시리즈_부분, 혼합매체(모니터, 프레임, LED), 가변설치,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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