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문화재단, "예술가들이 만든 호텔, 강원도 고성에 선다"
세계 두 번째 접경지역 아트호텔…20일 공식 오픈
(사진=강원문화재단)
강원문화재단은 고성군과 위탁협약을 체결하고, 고성군 평화지역 내 유휴공간을 예술과 접목해 새로운 문화예술관광 거점을 조성하는 ‘DMZ 문화예술 삼매경’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DMZ 문화예술 삼매경’사업은 ‘한반도 생태평화벨트 광역연계사업’의 일환으로 문화체육관광부와 강원도, 경기도, 인천광역시가 함께 접경지역의 기존 군사적 이미지를 예술을 통한 평화적 이미지로 탈바꿈시켜 새로운 문화예술관광자원을 구축하기 위한 사업이다.
“강원도에서 새롭게 일구는 사람들”이라는 의미를 지닌‘리 메이커(Re:maker)’를 대주제로, 고성군의 동해안 최북단 마을인 명파리에서 숙박시설로 활용됐던 유휴공간‘명파DMZ비치하우스’를 접경지역 최초의 아트호텔로 탈바꿈하는 사업으로 추진하고 있다.
동강 나 끊어 갈라진 역사를 증명하는 ‘통제의 선’이자 전쟁 및 분단의 한반도 70년을 상징하는 DMZ(비무장지대, demilitarized zone). 그 곳과 인접한 동해안 최북단 마을에 접경지역 최초의 ‘아트호텔’이 들어선다. 바로 이념의 장벽에 가로막힌 채 여전히 대치 중인 한반도의 현실과 화합·평화에 대한 바람을 버무린 아트호텔 ‘리 메이커(Re:maker)’이다.
강원도 고성군 명파리에 자리 잡은 아트호텔 ‘리 메이커’는 영국 작가 뱅크시(Banksy)가 이스라엘 베들레헴에 세운 ‘벽에 가로 막힌 호텔’(Walled Off Hotel)에 이은 세계 두 번째 접경지역 아트호텔이다. 뱅크시는 2017년 팔레스타인 분리장벽에 불화를 넘어선 인류 평화를 기원하는 호텔을 만들어 주목을 받았다.
6월1일 시작된 아트호텔 ‘리 메이커’는 2층짜리 2개의 건축물에 모두 8개의 아트룸(객실)과 부대시설을 갖추고 있다. 실제 머물 수 있는 아트룸은 그 자체로 평화·생태·미래를 주제로 한 고유 작품이다. 공간마다 장르를 넘나드는 예술작품이 들어섰고, 사용 가능한 일상 소품을 포함한 오브제(objet) 하나까지 예술가들의 손길을 거쳤다. 지난해 10월 이후 4월까지 모두 8명의 작가(팀)가 참여해 약 반년에 걸쳐 완성했다.
DMZ라는 특유의 장소성에 동시대미술을 절묘하게 접목시킨 오묘초 작가는 ‘불편함’을 키워드로 한 아트룸 'Weird tension'을 선보인다. 분단이 심어놓은 상황에 익숙해진 채 섬나라처럼 살고 있는 우리의 현실을 리얼하게 보여주는 작업이다.
철책 밖 실존하는 존재와 철책 너머에 갇힌 우리의 모습을 마주할 수 있는 작품 '친밀한 적들'과, 분단 이후 우리가 쌓아 올린 남북 간 거리감을 중첩된 혼종의 서사로 기록한 작품 '시간과 정신의 방' 등을 만날 수 있다.
신예진 작가의 아트룸 '산수설계 홈 프로젝트'는 ‘리 메이커’ 프로젝트의 주제 중 하나인 ‘생태’에 집중한 작업이다. 우리가 알고 있던 자연의 모습이 아닌 훨씬 더 깊숙한 곳에 자리 잡고 있을 법한 미지의 자연을 상상하며 제작됐다. 호텔이라는 장소성이 물씬한 이 작품은 자연과 예술이 일상으로 자연스레 스며들 수 있도록 설계됐다.
작품 '스펙트룸'(spectroom)과 '레이'(Ray)가 설치된 스포라_스포라(팀)의 아트룸은 경계를 마주하면서 존재하는 모든 것들의 갈등과 반목을 이탈한 조응과 포용을 그리고 있다. 색과 선을 중심으로 한 추상벽화인 '스펙트룸'은 오래전 판문점을 기록했던 보도사진가 구와바라 시세이(Kuwabara Shisei)의 사진을 재해석한 것이며, 고성 바다에 뜬 무지개에서 영감을 얻은 '레이'는 무기가 되는 다양한 금속(황동, 구리)을 이용한 빛의 시간을 상징한다. 한반도의 오늘을 반영하듯 현재도 철책으로 둘러싸여 접근이 금지된 바다와 무지개의 이질성이 이 작업의 특징이다.
이외 아트호텔 ‘리 메이커’에서는 실향민이자 허구의 인물인 ‘김 작가’를 통한 현실과의 정서적 왕복을 보여주는 박경 작가의 아트룸 '김작가의 방'을 비롯해, 인간과 물고기(육지 및 바다)·새(하늘)·검은색(밤)과 흰색(낮)의 5가지 요소를 모티브로 긴장의 장소 속 사색의 공간을 연출한 스튜디오 페이즈(팀)의 작품 '테셀레이션'(Tessellation) 등을 만날 수 있다.
또한 탱크를 뚫는 관통탄 등의 무기원료로 사용되는 전략물자 중의 하나인 금속으로 환경에 대한 조형적 해법을 탐구한 옴니버스식 공간을 연출한 류광록의 '금속방', 안락함과 평온함이 깃든 박진흥의 '쉼', 남북의 근원을 전통적 맥락에서 재해석한 채 고향에 대한 실향민들의 그리움을 덧댄 홍지은(도자기공방숲)의 아트룸 '조선왕가-again' 등도 관람객을 맞는다.
호텔 리 메이커는 작은 미술관이다. 아트룸으로 조성된 객실 외에도, 로비와 복도 등의 공용 공간 곳곳에 다양한 현대미술 작품들이 들어차있다. 레스토랑과 로비에 각각 설치된 주연 작가의 설치작품 'Plamodel DMZ'와 안평대군의 꿈 속 도원(桃源)의 광경을 옮긴 안견의 '몽유도원도'를 나전으로 재구성한 김종량 작가의 '신(新) 몽유도원도-나전'은 각각 10미터가 넘는 거대함 속에 디스토피아적 현실과 그 너머에 존재하는 유토피아적 이상향이 대비를 이뤄 눈길을 끈다.
이 밖에도 인간 내면과 실제의 풍경을 그로테스크하게 풀어낸 김나리 작가의 조각 '눈물'과 '검은 불꽃', 고성의 바람을 특유의 조형으로 치환한 해련의 회화 '미지의 숲∥', 자연 생태적이면서도 몽환적 여운이 물씬한 전경선의 부조 '등대', 금빛 찬란한 건축적 도상을 통한 상상의 미래를 표현한 신건우 작가의 회화 'Fondazione Prada' 시리즈 등도 만날 수 있다.
모두 공간에 특별함을 더하는 작품들이다. 특히 강원도와 DMZ의 이미지들을 초현실주의적 디지털 콜라주로 재구성한 김재욱 작가의 미디어아트 '신(新) 강원산수도'와 정혜련 작가의 라이트아트 'abstract time-DMZ', 그리고 육효진 작가의 키네틱아트 '바람'은 아트호텔 ‘리 메이커’가 들어선 명파리의 장소성과 낙관 불가능한 현실을 각자의 언어로 보여준다.
역사적, 정치적으로 비극이 녹아 있는 장소이지만 아름다운 실제 풍경으로 인한 모순이 부유하는 이 호텔은 일상과 예술의 접점을 파고든다. 따라서 작품 외에도 관람객 편의를 고려한 여러 부대시설(레스토랑, 커뮤니티룸, 굿즈샵)을 갖추고 다양한 체험프로그램들도 준비해 인근 통일전망대와 최북단 해수욕장인 명파해변, DMZ박물관 등, 안보관광차 방문하는 관람객이 편하게 쉴 수 있도록 조성됐고, 강의와 토론도 가능하다.
총괄 기획을 맡은 홍경한 예술 감독은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임을 상징하는 DMZ는 전세계 마지막 금단의 땅이자, 비극과 희망이 교차하는 장소”라며 “이 호텔은 단순한 숙박시설이 아니라 동란 이후 70년의 역사와 단단한 이념의 장벽 내에서 살아가는 우리의 현실과 마주할 수 있는 혼돈의 실험실”이라고 했다.
큐레이터 장민현 또한 “호텔 ‘리 메이커’는 일상과 접목된 공간에서 어떻게 문화예술의 영구성을 실현할 수 있을까에 초점을 둔 사업”이라며 “향후 의미 있는 랜드마크가 될 것”으로 내다봤다.
평화롭기에 오히려 평화를 망각하는 현실과 불편함 속 안락함, 이념과 탈이념, 경계와 조응, 생태와 미래를 미적 화두로 삼은 아트호텔 ‘리 메이커’는 오는 5월 20일(목) 오후 2시 공식 오픈한다. 운영 주체는 고성군으로, 5월 이후 누구나 무료 관람 및 체험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다.
DMZ 문화예술 삼매경 “아트호텔 ‘리 메이커’” 사업을 주관한 강원문화재단 김필국 대표는 “코로나19로 힘든 시기에 많은 분들에게 희망을 주는 공간이 되기를 희망하며, 아트호텔 ‘리메이커’가 고성군을 대표하는 관광명소가 돼 지역경제에 활기를 불어 넣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신아일보] 조덕경 기자 jogi444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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